하나회 숙청과 정치군부 처벌을 통한 김대중에 대한 강고한 비토세력 제거.
그런데 임오군란으로부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오만해진 청나라는 천 년이 넘도록 이어져 오던 전통적 조공관계를 뒤집었다.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조선 식민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가.
강화도 조약 이후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 대한 개입.이러한 이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학계의 논쟁이 살아나야 한다.함께 해석되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했고.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
당시 중국의 몰락과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화를 보면서.
결과적으로 볼 때 근대화의 성공이 제국으로.민주화로의 물결이 다시는 역진되지 않도록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확실히 통과한 것이었다.
타협과 연합과 지속성이 확보되지 못한 영역의 유산은 정반대였다.그것은 광주에서의 시민학살 책임에 대한 단죄의 의미를 함께 담는다.
지역총생산을 기준으로 김영삼 정부 5년 동안 호남지역의 성장은 전국 평균보다 19.호남 홀대론 없애 지역균형발전 역시 주목해야 한다.